일 잘할수록 인정 못 받는 이유
회사에서 살아남으려면 결과뿐 아니라 과정도 설명해야 한다.
회사 생활을 오래 해보니까 이젠 알겠더라. 회사에서 일 잘하는 능력은 미덕이 아니라 일종의 저주다. 내 옆자리 김 차장은 뭐 하나 맡으면 온 동네가 다 안다. “아, 이거 데이터가 완전 꼬였네요.” “협조 안 해주는데 제가 어떻게든 한 번 뚫어보겠습니다.” 일하는 내내 추임새가 끊이지 않는다. 팀장 입장에선 김 차장이 매일 전선에서 피 흘리며 싸우는 전사처럼 보이겠지. 그러니 결과가 좀 부실해도 “고생했네, 박 과장 아니면 누가 하겠어” 하며 넘어간다.
그러나 그 옆에 박과장은 정반대다. 성격상 구구절절 과정 떠드는 건 시간 낭비고, 일은 결과로 말하는 거라 믿었다. 문제가 생기면 일단 조용히 처리한다. 협조 안 해주는 부서는 메일로 조목조목 논리로 밀어붙여서 기어이 협조를 받아낸다. 그리고 보고는 딱 한 줄이다. “처리됐습니다.” 근데 이게 쌓이니까 이상한 기류가 흐른다. 팀장 눈에 박과장은 어느샌가 ‘늘 한가하고 일이 쉬운 사람’이 되어 있었다. 한 번은 박과장이 오랫동안 내내 머리 싸매고 붙잡아서 겨우 해결한 일이 있었다. 나름 회심의 결과물을 들고 갔는데, 팀장은 슥 훑어보더니 한마디 툭 던진다. “어? 금방 했네? 그럼 여유 있을 때 이것도 좀 봐줘.” 박과장은 허탈하다 뒤통수를 세게 맞은 기분이었다. 아, 이 사람은 내가 뭘 했는지 전혀 모르는구나. 내가 사고를 다 막아놓으니까, 사고가 날 뻔했다는 사실조차 이 조직에선 ‘없었던 일’이 된 거다. 결국 눈에 보이지 않으면 안 한 거나 다름없다. 웃기는 건 이거다. 일을 완벽하고 깔끔하게 처리할수록 본인의 가치는 역설적으로 점점 더 떨어진다. 시스템을 공들여 만들어 놓으면 사람들은 그게 원래부터 저절로 돌아가는 줄 안다. 그 시스템을 유지하려고 뒤에서 누가 얼마나 발버둥 치는지는 관심 밖이다. 반대로 맨날 사고 치고, 땀 뻘뻘 흘리며 수습하는 사람은 ‘위기 해결사’ 대접을 받는다. 이걸 깨닫고 나면 일하는 방식을 조금은 바꿔야 한다. 굳이 소란을 피우진 않아도, 적어도 본인이 지금 진흙탕에서 구르고 있다는 사실 정도는 남들이 알게 해야한다. “업체 담당자랑 몇 시간 싸워서 겨우 시작업 일정 맞췄습니다. 쉽지 않았네요.” 처음엔 이런 말 하는 게 참 없어 보이고 낯간지러웠는데, 이제는 안다. 이것도 엄연한 ‘일’의 일부라는 것을. 본인이 본인 스스로 자신의 일을 설명하지 않으면, 회사는 누군가의 헌신을 그냥 ‘기본값’으로 설정해버린다. 그리고 그 위에 더 무거운 짐을 당연하다는 듯 얹는다. 조용히 일 잘하는 사람은 결국 조용히 묻히고, 조용히 소모될 뿐이다. 억울하면 생색내라는 소리가 아니다. 자기가 한 일에 최소한의 이름표는 붙여야 한다는 뜻이다. 그래야 다음 업무가 ‘당연한 기본값’이 아니라, ‘내가 기꺼이 맡아준 일’이 된다. 요즘은 보고하러 들어갈 때 마음속으로 한 번씩 되뇐다. 조금 오글거리더라도 김 차장처럼 말해보자고. “이거 진짜 까다로운 건데, 제가 한번 해보겠습니다.” 남들 눈엔 생색으로 보일지 몰라도, 이 바닥에서 자신의 자존감을 지키며 오래 버티려면 그 정도의 ‘소음’은 필요한 법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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