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써 쥐지 않아도 머무는 평온
특별한 성취보다 괴롭지 않은 오늘을 긍정하는 담담한 행복.
행복이란 무엇인가?
예전에는 막연히 꼭 “행복하게 살겠다”고 다짐했던 것 같습니다. 마치 다음 시험에서 몇 점을 맞겠다는 목표를 세우듯이 말입니다. 그리고 TV에서, 친구가, 혹은 직장 동료가 말하는 “행복”이라는 어떤 지향점이 따로 있는 것처럼, 그것을 쫓았던 적도 있었던 것 같습니다.
젊었을 때는 행복을 늘 밖에서 찾았습니다. 월급이 조금 더 오르면 행복할 것 같았고, 남들보다 좋은 집에 살면 마음이 든든할 것 같았습니다. 회사에서 인정받고, 아이들 잘 키우고, 노후 걱정 없이 살 수 있을 만큼 모아두면 그때쯤은 행복하겠지 생각했습니다. 행복도 시험 점수처럼 남보다 더 많이 가지면 더 커지는 것이라고 여겼습니다.
그런데 살아보니 이상하게도 하나를 얻으면 또 하나가 부족했습니다. 승진을 하면 책임이 따라왔고, 돈을 조금 더 벌면 그만큼 쓸 곳도 늘어났습니다. 아이들이 크면 손이 덜 갈 줄 알았는데, 걱정의 모양만 달라졌습니다. 부모님은 점점 연로해지시고, 내 몸도 예전 같지 않았습니다. 아침에 일어나면 어깨가 묵직하고, 건강검진 결과지를 받아들 때마다 괜히 마음이 조마조마해졌습니다.
이제 나에게 행복이란 단어는 예전과는 확연히 다르게 다가옵니다.
큰 병 없이 출근할 수 있는 몸, 퇴근 후 집에 돌아왔을 때 불 꺼진 집이 아니라 누군가의 인기척이 있는 것, 밥 한 끼를 편하게 먹을 수 있는 시간, 주말 아침 알람 없이 눈 뜰 수 있는 여유. 예전에는 너무 당연해서 행복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던 것들이 이제는 참 귀하게 느껴집니다.
직장 생활도 그렇습니다. 젊을 때는 내 의견이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속이 상했고, 상사의 한마디에 며칠씩 마음이 흔들렸습니다. 후배가 나보다 먼저 인정받으면 괜히 초조했고, 남의 성과가 내 부족함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런데 나이가 드니 조금은 내려놓게 됩니다. 모든 사람에게 인정받을 필요도 없고, 모든 일에서 이길 필요도 없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물론 아직도 마음이 완전히 편한 것은 아닙니다. 회사 일은 이제 익숙해질 만도 한데 여전히 버겁습니다. 자식 걱정, 노후 걱정, 건강 걱정도 있습니다. 그래도 예전처럼 모든 것을 내 뜻대로 하려고 욕심내지는 않으려 합니다. 고집을 조금 접고, 화를 한 번 덜 내면 하루가 덜 힘들어진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행복은 즐거움만을 뜻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즐거움은 잠깐 반짝이고 지나가지만, 괴롭지 않은 마음은 오래 남습니다. 맛있는 음식을 먹는 즐거움도 좋고 여행을 가는 설렘도 좋지만, 그보다 더 깊은 행복은 마음이 시끄럽지 않고 조용할 때 찾아옵니다. 미워하던 사람을 조금 덜 미워하게 될 때, 걱정하던 일을 잠시 내려놓을 때, 오늘 하루 별일 없이 지나갔다는 사실에 안도할 때 말입니다.
오십대의 행복은 젊은 날의 행복과 조금 다릅니다. 예전에는 더 높이 올라가는 것이 행복인 줄 알았지만, 이제는 무너지지 않고 하루를 잘 버티는 것도 행복입니다. 한때는 남들이 부러워하는 삶을 꿈꿨지만, 이제는 내가 편히 숨 쉴 수 있는 삶이 더 소중합니다.
저녁에 퇴근해서 따뜻한 차 한 잔 마시며 “오늘도 큰일 없이 지나갔네” 하고 생각하는 순간이 있습니다. 저는 이제 그런 순간도 행복이라고 생각합니다.
행복이란 위대한 철학자나 고승의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그리 멀리 있는 것이 아닌 것 같습니다. 행복은 늘 우리 곁에 있고, 다만 그걸 느끼느냐 못 느끼느냐의 차이인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행복할 준비가 되면, 바로 행복해질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아침에 눈을 뜨는 것, 걸어서 출근할 수 있는 것, 함께 밥 먹을 사람이 있는 것, 가끔은 아무 말 없이 내 편이 되어주는 사람이 있는 것. 그리고 오늘 하루도 크게 아프지 않고, 크게 다투지 않고 무사히 지나간 것.
행복이란, 많이 웃는 날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이 크게 괴롭지 않은 하루입니다.
행복이란, 특별한 기쁨을 찾아 헤매는 것이 아니라 지금 가진 평범함을 조용히 알아차리는 일입니다.
그리고 행복이란, 내 삶이 대단하고 멋지지 않아도 “이만하면 괜찮다” 하고 스스로에게 말해줄 수 있는 마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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