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시대의 출근길, 나의 쓸모를 묻다
AI 시대 속에서 평범한 직장인이 생존하기 위한 태도와 준비에 대하여.
이젠 회사에서 AI 활용을 피할 수 없게 되었다.
2022년 말 OpenAI가 ChatGPT를 처음 출시했을 때만 해도, 또 하나의 새로운 기술이 등장했다고 생각했다. 예전에도 디지털 전환, 빅데이터, 스마트팩토리 같은 말들이 지나갔다. 그때마다 우리는 교육을 듣고, 보고서를 쓰고, 몇 개의 과제를 만들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 다시 원래 하던 방식과 크게 다르지 않은 모습으로 돌아가곤 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이전과는 차원이 다른 것 같다.
AI는 단순히 업무를 편하게 해주는 도구에 그치지 않을 듯하다. 이미 자료를 찾고, 문서를 정리하고, 코드를 짜고, 실험 조건을 제안하고, 결과를 해석하는 일까지 업무 안으로 들어오고 있다. 내가 며칠 동안 붙잡고 있던 일을 AI가 몇 분 만에 초안으로 만들어내는 것을 보면 처음에는 신기했지만, 이제는 마음이 조금 불편해진다.
연구소에서 일하는 직장인으로서 가장 먼저 드는 생각은 이것이다.
‘나는 앞으로 무엇으로 존재 가치를 인정받을 것인가.’
예전에는 성실함이 꽤 큰 무기였다. 실험을 많이 돌리고, 데이터를 꼼꼼히 정리하고, 회의록을 잘 남기고, 보고서를 기한 안에 내는 사람이 인정받았다. 물론 지금도 이런 태도는 중요하다. 하지만 AI가 반복적이고 정형화된 일을 빠르게 처리하기 시작하면, 단순히 성실함만으로는 부족하다.
AI 시대에는 일을 많이 하는 사람보다, 어떤 일을 해야 하는지 아는 사람이 더 중요해질 것 같다.
문제를 제대로 정의하는 능력, 질문을 잘 던지는 능력, 결과를 보고 이상한 점을 알아차리는 능력, 여러 부서와 기술을 연결하는 능력이 더 중요해진다. AI가 답을 내놓을 수는 있어도, 그 답이 우리 제품과 공정과 고객에게 정말 맞는지 판단하는 일은 아직은 사람의 몫이다.
연구소 업무도 마찬가지다.
실험을 대신해주는 자동화 장비가 있고, 데이터를 분석해주는 모델이 있고, 보고서를 써주는 생성형 AI가 있다. 그렇다면 연구원의 역할도 실험을 수행하고 결과를 정리하는 사람에서, 전체 흐름을 설계하는 사람으로 바뀌어야 한다. 어떤 가설을 세울지, 어떤 데이터를 모을지, 어떤 조건을 바꿔볼지, AI가 낸 결과를 어디까지 믿을지 결정해야 한다.
요즘 AI 시대의 인재상으로 자주 언급되는 ‘오케스트레이터’라는 표현이 와닿는다.
오케스트라 지휘자는 모든 악기를 직접 연주하지 않는다. 대신 각 악기가 언제 들어오고, 어느 정도의 세기로 연주해야 하는지 알고 있다. AI 시대의 직장인도 이와 비슷해야 할 것 같다. 모든 일을 직접 할 필요는 없지만, 전체 구조를 이해하고 방향을 잡을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더 비관적이고 허무한 생각도 든다.
지금 우리가 인간의 역량이라고 말하는 것들조차 조만간 더 발전한 AI에 의해 상당 부분 대체될지도 모른다. 문제 정의, 실험 설계, 데이터 해석, 의사결정 지원까지 AI가 점점 더 잘하게 된다면, 지금 우리가 “사람의 몫”이라고 생각하는 영역도 계속 줄어들 수 있다. AGI가 등장한다면, 지금 이 글에서 말하는 생존 전략조차 언젠가는 쓸모없는 이야기가 될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니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더 중요한 것이 있다.
너무 빠르게 변하는 기술 앞에서 우리가 확실하게 준비할 수 있는 것은 결국 하나만 남는다. 끊임없이 받아들이고, 배우고, 다시 적응하겠다는 자세다. 특정 도구 하나를 잘 쓰는 능력보다, 새로운 도구가 나왔을 때 두려워하지 않고 내 일에 연결해보는 태도가 더 중요해질 것이다.
그렇다고 갑자기 거창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평범한 직장인 입장에서 당장 할 수 있는 일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
아래는 그동안 관련 영상과 자료를 보며, AI 시대에 직장인이 살아남기 위해 해야 할 일을 내 나름대로 정리한 내용이다.
첫째, AI를 남의 일처럼 보지 않는 것이다. 회사에서 공식 도구를 주지 않더라도, 개인적으로라도 써보면서 감을 익혀야 한다. 문서 요약, 아이디어 정리, 코드 검토, 실험 계획 초안 같은 작은 일부터 맡겨봐야 한다. 직접 써봐야 AI가 잘하는 일과 못하는 일이 보인다. 그래야 막연한 불안도 줄어든다.
둘째, 내 업무를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AI에게 일을 시키려면 내가 먼저 내 일을 구조화해야 한다. 목적이 무엇인지, 입력 데이터가 무엇인지, 제약 조건이 무엇인지, 좋은 결과의 기준이 무엇인지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사실 이것은 AI 때문만이 아니라 좋은 연구원이 되기 위해 원래 필요했던 능력이다. AI가 그 필요성을 더 분명하게 드러냈을 뿐이다.
셋째, 경험에서 나오는 감을 버리지 말아야 한다. AI는 많은 데이터를 바탕으로 답을 낸다. 하지만 현장에서 오래 일한 사람이 가진 감은 데이터만으로 설명되지 않는 경우가 있다. 장비가 평소와 다르게 움직이는 느낌, 특정 조건에서 결과가 이상하게 튈 것 같은 예감, 고객이나 생산부서가 실제로 받아들이기 어려운 제안 같은 것들은 경험이 있어야 보인다. 이런 암묵지는 오히려 더 귀해질 수 있다.
넷째, 혼자 잘하는 사람보다 연결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직장에서의 일은 혼자 끝나는 경우가 거의 없다. 연구, 생산, 품질, 특허, 구매 등 많은 부서가 연결되어 있다. AI가 각자의 업무 효율을 높여줄수록, 전체를 연결해 실제 성과로 만드는 능력이 중요해진다. 좋은 답을 하나 얻는 것보다, 그 답을 조직 안에서 실행 가능한 형태로 바꾸는 일이 더 어렵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AI를 단순히 잘 사용하는 사람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앞으로 살아남는 사람은 AI 사용법을 많이 아는 사람이 아니라, AI와 잘 협업하는 사람일 것이다. AI에게 맡길 일은 맡기고, 사람이 더 깊게 봐야 할 부분은 끝까지 붙잡는 사람. 정답을 빨리 받아내는 사람이 아니라, 좋은 질문을 만들고 방향을 잡는 사람. 자기 업무만 처리하는 사람이 아니라, 기술과 현장과 사업을 연결하는 사람.
솔직히 말하면 불안하다.
내가 해온 일 중 많은 부분은 분명 AI가 더 잘하게 될 것이다. 보고서 초안, 자료 조사, 반복 분석 같은 일은 예전만큼 내 경쟁력이 되지 않을 수 있다. 더 나아가 언젠가는 내가 지금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판단과 설계의 영역까지 AI가 대부분 가져갈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렇다고 아무것도 하지 않을 수는 없다.
기술이 어디까지 발전할지, 혹은 인간의 능력이 더 이상 필요 없다고 느껴질 만큼 발전할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한 가지는 분명하다. 변화가 빠를수록 멈춰 있는 사람은 더 빨리 뒤처진다. 완벽한 준비는 불가능하더라도, 계속 배우고 받아들이는 태도는 유지해야 한다.
결국 중요한 것은 내가 하는 일의 의미를 계속 재정의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더 이상 단순히 일을 처리하는 사람이 아니라, AI와 함께 문제를 정의하고, 실험을 설계하고, 판단을 내리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그리고 그 역할조차 머지않아 바뀔 수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며, 계속 공부하고 적응해야 한다.
쉬운 일도 아니고, 더군다나 이제 피할 방법은 없는 것 같다.
내일부터라도 내가 하는 일의 어느 부분에 AI를 넣을 수 있을지 생각해보려 한다.
아마 그 작은 시도가, 앞으로 내가 조직에서 계속 필요한 사람으로 남기 위한 첫걸음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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